08년5월18일

고백교회에서 80년 5.18 민중항쟁의 영령들을  참배하러 다녀왔다.
금남로 구.도청광장은 5.18 기념의 자리에서 FTA 졸속 협상과 관련하여 문화제행사를 진행했고
역사 현장의 금남로에서는 5.18 정신을 계승하고자 오늘 역사 현장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었다.
잠시 들렀다가 발걸음을 5.18 묘지로 향했다.
5.18묘지는 망월동 구묘지와 신묘지로 나뉜다. 신묘지는 기념관과 함께 많은 5.18 영령들이 모셔져 있다.

많은 참배객들이 왔었다. 오전에는 이명박 대통령도 왔었다고 한다. 참배객들보다 더 많은 1만여명의 경찰을 동원해서 말이다.
참으로 우스운 꼴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묘지 가운데 '은명기 목사님'의 묘에 모두들 걸음을 멈췄다.
고백교회 한상렬 목사님의 영적 아버지이신 은목사님은 유일하게 설교도중에 경찰에 연행되신 분이시다.

5.18과 관련하여 경찰에 피해 숨어계셨던 것을 부끄러워하시며 평생을 자숙하고 청빈하게 사셨던 분이시다.
5.18로 인하여 전주35사단 헌병대에 체포되어 광주 상무대에서 모진 고초를 겪으셨던 한상렬 목사님과 함께
임마누엘교회(기장)를 여시고 지금의 고백교회를 있게 하셨던 분이시다. 구묘지, 망월동 묘지로 걸음을 옮겼다.
잘 꾸며진 신묘지에 비하여 구묘지는 보다 현장감이 느껴진다.
6월 항쟁때 숨진 이한열 열사와 함께 많은 5.18 열사들이 잠든 곳이다.

이 곳에 눈에 띄는 열사의 묘가 있다.
이세종 열사. 5.18의 첫희생자이다.
전북대생이었으며 5.17일 당시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군인들의 집단
구타로 숨졌다. 이세종 열사로 인하여 5.18은 전남과 전북이 연결된다. 그 출발에 전북대생 이세종 열사가 있다.

열사들의 묘를 지나다가 눈에 띈 영령의 사진 앞에 걸음을 멈췄다.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는 '최미애 님'의 묘다.
80년5월 당시 갓 결혼한 이 분은 시위에 참가한 남편을 찾으러 나가다가 군인들에 의해 학살되었다.
예쁜 얼굴에 순한 신부의 미소가 담긴 이 사진에 채 피지 않은 채 군화발과 곤봉과 총탄과
대검에 쓰러져간 많은 순진무구한 시민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아직도 그 이름과 사랑하는 가족들조차 만나지 못한 채 28년동안 억울하게 묻힌 '무명열사의 묘'는
28년이 지난 08년 5월.. 현장에 있는 내게 큰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아직도 민중항쟁이 '민주화운동'이라는 엉성한 이름으로 남아 있으며 여전히 가해자들의 증언이 미흡한 상태이다.
국가로 인하여 집단 학살된 이 현장이 역사앞에 재대로 재발견되지 못한채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80년5월민중항쟁 때 쿠테타를 일으켜 군을 장악한 전두환과 그 일
당들의 민중학살을 찬양하고 축복했던 김준곤 목사(前CCC총재)등
기독교 지도자들은 아무런 죄 고백이 없으며 기독교내에서도 그리
고 신학교나 신학생들에게서 조차도 이에 대한 아무런 입장을 내비
치지 않고 있다.

지금 여기 내가 예수 믿는 자로.... 예수살기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
가...


[현장사진 : http://www.cyworld.com/kimamuge] *홈피 조회수 늘리려는 음모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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