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월에 열린 두 번의 제직회와 201718일에 열린 임시제직회는 제게 향린에서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 중요한 사건이자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어제 임시제직회가 끝나고 집에 와서 저는 밤새 잠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래 제 글에서 그 이유를 쓸 것이고,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우려가 됩니다만 이런 글이 하나 정도는 교회 홈페이지에 남아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글을 씁니다. 

저는 19912월 홍근수목사님이 구속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주부터 향린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다음 달이면 제가 향린교회에 출석한지 만 26년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이 될 때까지 예장 합동 소속의 보수적인 교회에 다녔습니다. 작고하신 제 부친은 보수교회의 장로셨고, 지금도 보수교회에 다니시는 제 모친은 권사로 봉직하고 계시며, 제 형은 보수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연로하신 제 모친은 지금도 온 가족들이 모두 한 교회에 다니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있으십니다만, 저는 제 교회가 있고 어머니가 출석하시는 보수교회에 다니고 싶은 생각은 없기 때문에 향린교회에서 계속 다녔습니다. 향린에서 제 안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딸과 아들도 낳아 홍근수 목사님께 유아세례를 받았고,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제가 청년시절 보수교회를 떠나 향린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은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보수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하느님 나라 건설에 더 이상 기여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0대 중반에 출석하기 시작한 향린교회는 제게 이전의 교회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 교회였습니다. 매년 교회창립주일을 지키며 창립정신을 되새기는 교회였고, 청년들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교회였습니다

향린교회에 출석한지 몇 년 되지 않아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교회갱신선언통일공화국 헌법 초안을 만들 때, 그 내용에 어떤 것들이 포함되면 좋겠냐고 저를 포함한 청년들에게 여러 차례 물어보면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애썼던 향린 선배님들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청년신도회 시절 매주 발간하던 청년공동체에 청년들이 돌아가며 사설을 쓰고, 교우들의 글을 모아 싣는 게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했으며, 가끔 선배님들이 글을 읽고 의견도 주시고, 장로님들의 목회기도나 홍목사님의 하늘뜻 펴기에 인용을 해주시기라도 하면 청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는 그 분위기에 감사함과 자랑스러움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향린교회에 정관도 없고 목운위도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청년들이 교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향린교회의 선배님들은 젊은 청년들을 집사로 임명해서 제직회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도 결혼한 다음해인 1995년 서른 살 때 집사로 임직하게 되면서 제직회에 참석할 자격을 부여받았습니다만 신혼 때 연년생의 아이들을 키운다는 핑계 등으로 제직회에 별로 열심히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가끔 제직회에 참석해보면 몇 몇 젊은 선배 집사님들의 적극적인 발언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창립 40주년 이후의 향린은 꾸준히 교회갱신을 실천하면서 한국사회에서 하느님나라 운동을 전개하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정관을 제정하고 목운위를 신설하여 교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했고, 민족적인 정서를 담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배형식과 교회내부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교우들의 자발적인 헌신과 노력으로 예향을 운영해왔고, 하느님 나라 선교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선교센터 협동조합 길목을 세웠고, 교회예산의 30%를 선교비로 지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저도 향린의 그런 흐름에 조금이라고 기여하고자 몇 가지 조그만 봉사들을 실천하며 늘 향린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글의 모두에도 썼듯이 최근 세 번의 제직회는 제가 경험한 향린의 되돌아보게 하는 경험이었고, 지금의 향린이 어떤 상황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우선 저는 최근 제직회에서 발언하는 것이 무척 어렵고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의견과 다른 발언을 하는 경우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이 발언을 하는 중에 뒤에서 수근거리며 불만을 이야기하거나, 불만스럽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입을 막고 향린을 개방적인 분위기를 헤치는 것이며 이전의 향린에서는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현상입니다. 

나이 50이 넘고 교회에 출석한지 25년이 넘은 제가 발언하는 것이 불편한 상황이라면 최근에 향린에 출석하기 시작한 분들이나 나이 어린 청년들은 더욱 더 발언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런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토론될 수 있는 분위기가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향린이 밝은 미래를 가지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상황에서 발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며,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발언도 예의를 갖추어 경청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의 시간에 자신이 동의하는 발언에 대해 박수를 치는 것도 상황에 따라서는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이의 발언에 동의할 때 박수를 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상황은 박수를 받은 의견과는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이 발언하는 것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동의하는 의견에 대해서 박수를 치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 연말 제직회에서 2017년 재직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은 분명히 절차상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자리에서 그 실수를 지적해야하나 잠깐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박수를 치며 찬성을 표하는 상황에서 그 실수를 지적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고 결국 발언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직회 이후에 개최된 목운위에서 제직회장 선출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저는 그 상황에서 제 의견을 뒤늦게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왜 그 제직회 자리에서 절차상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고 뒤에 가서 그런 지적을 하냐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그 제직회 자리에서 절차상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 자리에서 실수를 정정하고 불필요한 임시제직회를 열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 자리에서 제가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비겁했다고 제 자신을 자책합니다.

그렇지만 작년 연말제직회에서 적합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박수로 제직회장 선출을 통과시키려는 분위기를 뒤엎는 발언을 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셔야 향린이 앞으로 어떻게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반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말제직회 자리에서 절차상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고 뒤에 그 실수를 지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민주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고 제직회장을 선출했다는 것과 그런 실수를 한 것에 대해 사랑으로 보듬고 가야지 왜 지적을 해서 교회 내에 분란을 일으키냐는 지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목운위가 제직회장의 선출과정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월권행위라고 이야기를 하시기도 합니다

저는 절차상의 문제를 뒤늦게라도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며, 저를 포함하여 그 회의에 참석했던 향린의 구성원들과 향린을 사랑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런 문제 제기를 제직회든 목운위든 어떤 기구에서라도 논의하는 개방적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것이 향린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향린의 정관에 당회, 목운위, 제직회 등의 여러 기구들의 위상과 역할을 구분하여 둔 것은 다양한 언로를 열어두기 위한 방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목운위는 정관개정과 관련된 권한을 부여 받고 있으며, 기존에 정관 해석과 적용에 대한 유권해석의 기능도 수행해온 기관입니다. 따라서 제직회장의 선출 과정이 정관의 규정에 위배된 것이냐는 질의에 대해 논의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기관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뒤늦게라도 문제를 지적하고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사실 귀찮은 일이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손해를 보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행위를 해서 칭찬을 듣기보다 비판을 받거나 나아가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정신적으로 피곤해지기만 하고 얻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회의 절차를 지키지 않은 실수를 정정하지 말고 사랑으로 보듬고 나가자는 이야기는 보수교회에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이고 저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향린교회라면 이런 비판적인 이야기들이 좀 더 자유롭게 어떤 기구에서든 이야기될 수 있는 개방적 분위기를 가지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사랑이 없이 그렇게 비판하고 지적하냐?”는 이야기는 보수교회에서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많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민주주의 절차보다 성령의 법이 더 우선하는 것이다라고 하느님을 내세워 권위적으로 짓누르는 방법입니다 

저는 향린교회의 민주적 운영을 규정하고 있는 향린정관을 기초로 절차상의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왜 사랑의 법이나 성령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향린 공동의회에서 2/3이상의 찬성으로 채택한 향린교회 정관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정관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논의를 통해 정관을 개정해나가면 되는 것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정관의 내용이 정당한 것이라면 그것을 지켜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정당한 내용으로 민주적인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향린 정관을 근거로 잘못된 실수를 바로잡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왜 사랑의 법이나 성령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입니까? 정당한 민주적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향린의 정관에 기초하여 실수하고 잘못한 것을 바로잡아 나가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성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까? 

향린의 정관은 향린이 교회갱신을 실천해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자랑스러운 유산이고 다른 교회들도 이를 본받는 경우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관이 없거나 정관이 있어도 민주적인 절차가 제대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서 갈등과 법적인 분쟁에 휩싸이는 교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정관을 무시하기 보다는 정관을 잘 다듬고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긴 글을 이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어제 임시제직회에서는 제가 잊지 못할 두 가지 장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저와 비슷하게 보수교회에 다니다가 향린에 와서 20년 가까이 출석하면서 봉사를 해온 후배 한 명이 제직회 중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절차상 하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연말 제직회의 제직회장 선출 과정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자는 의견이 다른 의견에 비해 3표 부족하여 의결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누가 제직회장에 선출되는가 하는 문제는 향린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향린에는 제직회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이 있으며, 이번에 선출되신 제직회장 역시 그런 분들 중에 한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적절한 민주적 절차를 거쳐 제직회장을 선출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절차를 무시하고 원칙을 어기기 시작하면, 향린교회는 나이 많고 오래 출석한 교우들만의 의견이 지배적인,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교회로 변해갈 것입니다. 그리고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논의는 못하고 매번 절차상의 문제로만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일반 보수교회와 다를 바 없는 교회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