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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가선교라는 중차대한 사업을 앞둔 우리 향린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긴 인생의 여정을 살다보면, 다중의 인격으로 구성된 조직을 운영하다보면
많은 부분, 삶과 조직에 정황이라는 부분을 생각하게 합니다.
김선생의 매우 성실하고도 치열한 자기 삶을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조목사님의 선지자적인 용기와 포용력있는 인격을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면서 이 안타까운 정황에 깨달음의 미학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물고 물리는 듯한 생산적인 담론과 논쟁이 어려울때에는 모든 종교의 경전에서처럼 예화를 들어 그 깨달음을 대중에게 주지요
지난 2001년 2월 중순 제주에서는 ‘한국인권재단’ 주최의 인권학술회의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당시 강정구 선생님이 참여한 것으로 기억하지요.
대회 진행 셋째날 오후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전체 비상회의가 열렸습니다.
여성인권운동가 ‘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의 제안에 의해서였습니다.
민족사의 아픔인 정신대 할머니들을 돌보는 ‘나눔의 집’ 혜진 스님이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입니다.
여러 여성운동가들이 조직적으로 돌아가면서 상황을 설명하고 분위기를 조성하였지요.
이를 공개하고 전면 사회의제화하면서 참가자 일동의 성명서를 채택하자는 것입니다.
충격적인 배신감과 상실감 등이 교차하는 상황이었지요.
당시 정세와 상황은 정신대 할머니들의 도쿄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중차대한 상황이라 더욱 그러했습니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통곡이 하늘을 찌르는 듯 하고, 조롱하는 일본 아이들의 조소가 머리에 그려지기도 하여 일순 당황과 함께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에 제가 최영애 소장으로부터 마이크를 빼앗듯이 하여 발언을 합니다.
“성폭력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제도와 관습을 타파해야 할 우리 사회의 의제이다. 또한 쉬쉬하고 있지만 운동 전반에 만연해 있는 비도덕적인 성폭력의 실태와 각성을 위해서도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과 정세를 돌아보자. 이 시기가 어떠한 지점인가? 정신대 할머니들의 도쿄 재판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지 않은가? 분노와 배신감으로 치를 떨고 싶지만, 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시대와 시기, 정세와 정황에 맞게 완급조절을 하면서 풀어가자”는 요지였습니다.
난리가 났었지요. 내 노라하는 우리 사회 여성운동의 주자들을 제끼면서 제 특유의 강한 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내었으니 말입니다. 그 후로 저는 본의 아니게 여성운동가들에게는 기피 인물(?)이 된 것 같습니다.
이로인해 학술회의는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온 종일 이에 대한 토론으로 방마다 밤을 지새웠지요.
다행히 이 일은 활동가들이 지혜롭게 해결하였습니만, 우리 만 해결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기에 입소문으로 인해 정신대 할머니들의 재판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사회에서 아직도 진행중에 있는 현실입니다.
실명을 들어 죄송하지만 이상의 내용은 실화입니다.
김선생의 예술에 대한 자긍심과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치열함은 항상 성실함 그 자체이지요. 문제를 푸는 방식은 한 방법이 아닌 다양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김선생다왔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우리는 여타 교회에서는 생각지도 못하는(나름의 흠이 있지만) 조헌정 목사님라는 고매한 인격을 소유하고 있지 않나요. 이를 무한히 안타까운 애정으로 지켜보는 향린 교우들이 있지 않나요.
우리의 자산, 소중히 지켜내면서 선교가 분열이 아닌 분가로 갈 수 있는 중차대한 사업으로 인식하여, 우리 모두 두손 합장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향린공동체와 더불어 지혜롭게 이겨냅시다.
愼獨이라 했습니다.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을 삼가라는 뜻입니다. 격정적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한국교회의 모범적인 분가선교를 위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좋은 일에 好事多魔가 전혀 끼어 들 여지가 없게 기도하고 또 기도합시다.
이후에 확인한 내용.
나눔의 집 원장이던 혜진스님 사건은
거기서 봉사를 해 오던 봉사자와의 일이었다고 함.
정확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글을 쓴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다만 제 논지가 흐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징계까지 가게되고 이 일로 서울지부의 전체 조합원들이 술렁이고 많은 상처를 받은 일은 성희롱 사건 당시 전술적 국면을 중요시하던 전교조 지도부의 결정으로 일을 가능한 조용히 덮게 되었던 처리방식에서 비롯되었답니다. 일이 발생했을때 상처받은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잘잘못을 따져 일을 처리하였으면 조직에 그렇게 큰 손실과 지부장 직위해제라는 사건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었을 것을...... 일에는 전략,전술보다 더 큰 원칙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닫을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갑자기 왜 목사님의 발언 사건이 왜 분가와 연결되는 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일은 우리 향린 내부의 성찰의 문제이고 향린이 보다 예수님과 닮아 가기 위한 고통의 과정이지요. 오늘 충분히 아파한다면 내일은 보다 나아질 것을 믿습니다.
거룩한 곳, 진리를 가르치는 곳, 목사가 성도들을 축복하는 곳이라고 풀이하여 올린 글도 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후자쪽을 생각하는 듯 하다.
학교에서 강대상이라고 하지 않고 일반 강사가 강의하는 탁자를 강대상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 교인들도 알게 모르게 강대상 하면 후자쪽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강대상에서 하는 설교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차별성을 가지고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대상은 부정적인 면이 많은 것이다. 목사가 하느님의 성령이나 계시를 받아 교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런것처럼 느끼게 한다면 분명 잘 못된 것 아닐까?
교인들과 전혀 다른 후드나 기타 의복 또한 그런 역할을 은연중에 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교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교황의 의복이나 지팡이 등)
서울 대형교회 목사가 하얀 가운을 걸치고, 화려한 후드를 하고 강대상에서 설교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고 한심하다는 느낌이 든적이 있다.물론 그 화면이 목사의 비리와 관련된 뉴스화면이라 그랬을수도 있지만 목사의 신분을 과대포장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강대상에서 하는 설교는 흐트러짐이 있어서도 안되고 단순한 유머에도 상처받는 일이 생길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번 사건이 이러한 강대상 논리와 연관이 있는 지 없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의 생각에는 조금은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려면 교회내 모든 계층간의 차별(차이?)을 없애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장로가 한 말, 목사가 한 말,집사가 한 말, 새 교우가 한 말. 모두 같은 값으로 대하는 교회, 어떤 형식적인 차이도 없는 교회가 진정 평등한 교회요 모든 교인이 목회자인 교회가 될 것이다.

5.13~5.19 












지금 그 사건을 예로 드신 요지는
정신대 할머니들의 도쿄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외부적으로 중차대한 상황에서
내부적인 성폭력 사건을 즉각적으로 다루고 해결하는데 정신을 쏟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입소문을 타고 일본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어
아직도 정신대 할머니들의 재판이 10여년 동안 진행되고 있다는 그런 얘기인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도 향린의 내부적인 문제를 드러내어
향린의 분가 선교를 방해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일이라는 말씀이신거군요.
장길산님, 정신대 문제를 민족사의 아픔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할머님들 개인의 삶의 고통을
민족사의 아픔이라는 단어로 다 표현이 된다구 생각하십니까?
민족사의 아픔이라면 왜 그 할머님들은 고국에 돌아와서도
더럽혀진 몸이라는 편견으로 혼인도 하지 못하고
수치심과 자학 속에서 홀로 외로이 인생을 사셨어야 했을까요?
민족사의 아픔이라면 왜 오랜 시간 그 분들의 피해를 당당히 폭로하고 밝히지 못했을까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에 대해 독립유공자 단체에서는
정신대 할머니들을 지칭하여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분들의 숭고한 뜻이 담긴 곳에 창녀들을 기념하는 박물관을 세울수 없다는 발언을 아직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항의하면 그것으로 다 해결이 되는 건가요?
이 분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성에 의한 차별과 폭력에 희생당하고 계십니다.
그런 이 분들이 남은 여생을 지내시는 나눔의 집에서 돌보는 위치에 있는 남성,
그것도 성직자라는 권력을 지닌 사람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시대와 시기, 정세와 정황에 맞게 완급조절을 하면서 풀어가자”는
이 말은 저에게 정말 끔찍하게 다가옵니다.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면 일본정부와 싸우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대체 누구를 위한,무엇을 위한 운동을 하나요.
명분이 너무도 명확한 사안에 대해 비판하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선과 악, 혹은 진보와 보수라는 구도에 놓고 비판하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성찰이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하면
왜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들이 많은데 분열을 조장하냐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그 운동에서 주체인 '나'는 성찰의 대상이 아닌가요?
무엇이 향린의 선교적 과제인가요?
분가선교를 위해 분열을 조장하지 말라구요?
이 일은 분가교회와는 별개로, 향린교우가 겪은 아픔입니다.
강대상에서 목회자가 했던 말에 상처입은 교우가
그 감정을 토로하는 것을 왜 분가선교를 방해하는 일로 받아들이시나요?
감정을 토로하는 사람이 상한 감정에 대한 근거를 가지고
그것들을 쏟아내는 것이 여러분들에 대한 믿음없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상한 몸뚱아리를 있는 힘껏 던져 부딪히는 사람의 심정이
분열과 분란을 조장하려는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방법상의 아쉬움을 이야기 하시는데
이것이 목회자와 개인의 관계 속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기에,
강대상에서 대중을 상대로 한 설교라는 시간에 벌어진 일이기에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받아내는 아픔을 압니다.
이것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우리 사이를 지나가게 될지
저 또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