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삶

 

창세기 1, 26-28 ; 마태오5, 13-16

 

최 주 전도사

 

 

여러분은 “여름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물놀이, 에어컨, 팥빙수 등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여러 가지 것들이 생각나실텐테요, 올해 여름 저에게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더운여름 가슴을 시원하게 울려주는 매미소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밖에서 일을 보고 교회 사무실에 들어와 온몸의 열기를 식히며 조용히 있다보면 어디선가 매미소리가 들려옵니다. 매년 여름이면 항상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그렇게 쩌렁쩌렁 울었지만 미안하게도 지금껏 한번도 제대로 귀를 기울여 알아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올해 여름 그렇게 가만히 매미소리를 듣고보니 가슴까지 시원하게 울려주는 그 소리가 참 반갑게 느껴지면서 매미뿐 아니라 우리 곁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리를 무심코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아직 매미소리를 유심히 들어보지 못하신 분들은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뜨겁게 가슴을 울리며 자신을 드러내는 매미를 통해 주변과의 관계에 새로운 깨달음의 시간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어느새 향린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보내고 제가 부임한지 벌써 1년 3개월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즐겁게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는데요. 오늘은 처음으로 향린 강단에 올라 하늘뜻 펴기를 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이라 많이 떨리고 부담스럽긴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늘 뜻을 펼쳐보려 합니다.”

 

오늘은 교회교육주일로 지키면서 교육부서와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번 교육부서에서는 “예수님 따라 화해의 큰 길 걸어요!”라는 주제에 맞춰 각 부서에 맞게 교사들과 학생들이 한데 어우러져 여름들살이를 다녀왔습니다. 많은 교우님들의 기도와 관심, 그리고 다양한 신앙교육을 통해 한 층 더 성장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끊임없는 격려, 관심과 기도로 응원해주시고, 따뜻한 말로 용기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여름들살이를 통해 어떤 주제로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 변화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새삼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1성서 본문을 보면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기록에서 우리는 삶과 교육이 만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다르게, “하느님의 형상”(창1:27)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형상에 관한 여러 해석이 많이 있습니다만,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의 형상은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으로, 이성과 언어능력과 행위능력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맨 처음 창조되었을 때부터 이미 교육적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 남자와 여자, 부부라는 둘의 공동체적 존재로 즉, 함께 더불어 사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피조물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제1성서 본문을 보면 하느님과도 대화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가진 존재였으며, 동식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먹을 것을 대접하며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탐구의 능력과 행위의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은 이미 인간을 교육적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초에 교육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이성과 언어능력과 행위능력을 가진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인 우리들은 참 가치와 만나면서 참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회복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오늘 읽은 제2성서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우리’임을 일깨워 주신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너희’가 소금이라고 하셨으니 ‘우리’가 소금 구실을 해야 하고, ‘너희’가 빛이라고 하셨으니 ‘우리’가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13절에서 ‘’맛을 잃어버렸다“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소금의 ‘소금다움’은 그 맛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 소금이 ‘너희’를 빗대어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여기서 ‘맛’은 너희의 ”너희다움“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과는 다른 너희 나름의 정체성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금이 소금다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질 수 밖에 없듯이 너희의 ‘너희다움’을 잃어버린다면 밖에 버려져 밟히는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희의 ‘너희다움’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피교육자들은 나의 정체성을 갖고, ‘자기다움’을 얼마나 실현시키고 있을까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함이 아닌,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은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출세하라고 온갖 정성을 다 쏟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운명과 행복이 점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인 듯 많은 부모들은 점수를 잘 받으면 기뻐서 함께 웃고 잘못 받으면 세상이 무너져라 시름에 잠기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수없이 많은 교육을 받고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나를 찾아가는”과정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많은 피교육자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돌아볼 여유조차 없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 때 나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고민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 교육의 현실입니다.

교육을 통해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사람됨”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저는 20-26세의 새날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새날청년회가 2010년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점검해본 것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꿈은 무엇인지? 나의 기도제목은 무엇인지? 앞으로의 나의 삶을 통해 나를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지? 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고 다짐해보았습니다.

이렇듯 나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통해 ‘자기다움’을 찾아가고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너’를 생각해보고, “우리”를 생각해보며, “향린”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2010년을 디자인해보았습니다.

 

5월 봄 수련회에서는 “너”를 생각하며, “너”가 가지고 있는 색깔로 서로를 표현하며 사랑을 전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2주 전 새날청년회는 “여름보다 뜨거운 우리”라는 주제로 2박3일 동안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리에서 여름들살이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안에서 기쁨을 표현하고 행복을 모아서 평화를 나누어 보는 시간을 갖으면서, 우리들의 말과 생각 그리고 기도를 통해 평화를 나눌 수 있는 하느님의 일꾼들로 살아가기로 다짐해보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게 될 것이며, 이제는 향린에서,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발돋음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다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4절에서 “빛의 은유”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16절의 “착한 행위”를 통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너희’야말로 등불과도 같은 존재이니, 등불을 켜서 빛을 비추듯이 ‘착한 행위’를 통해서 빛을 비추라는 적극적인 권면의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라면, 착한 행위를 함으로써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추어”(5:15) 깨닫게 해야 하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해석해본다면 실천적인 차원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에 있어서도 우리의 삶은 반드시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6절에서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라고 분명히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교육은 지식을 채우는 것, 즉 아는 것에 많이 머물러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류의 지식습득능력은 발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식이 고도화된다고 해서 더 좋은 사회, 보다 나은 사회로 간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아는 것을 실천하는 능력입니다. 교육에 있어서는 실천에 바탕을 둔 살아있는 교육, 이론이 겸비된 실천, 즉 프락시스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삶을 다양하게 정의하고 실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공통된 사실은 예수의 삶은 실제로 고통받는 민중의 현실에 동참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에서 배우고 있을 때 저 역시 예수의 삶을 따라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깊이 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들의 강의를 통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신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듣고 난 후로는 몸으로 실천하지 않고 배우는 신학교육이 도무지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잠시 배움을 중단하고 무작정 네팔로 가서 현지 아이들과 만나고 의료봉사를 통해 사랑의 실천을 경험하였습니다. 네팔에서의 1년은 저의 신앙의 큰 밑거름이 되었고 신앙과 실천, 배움과 실천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올해 여름 이번 휴가를 이용해 베트남으로 의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38도의 찜통 더위를 이겨내며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힘겨움 속에 “함께”라는 기쁨과 “삶을 나눈다는 것”의 기쁨을 배우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머리로 익히고, 몸으로 실천하는 삶을 통해, 그리고 나눔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은 매우 어렵고 힘든 작업이지만 우리의 삶에서 꼭 필요한 배움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고,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보는 것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배움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커다란 힘이 될 것이고, 가치 있는 삶을 향해 가는데 커다란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 있는 삶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착한 행위” 즉 하느님을 찬양하고 영광돌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한 가지씩 약속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착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어떠한 나눔의 삶을 살아가며, 교육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다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자기다움’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펼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